2024.04.05 - [민속학] - 한국 요괴 2 - 이매망량(魑魅魍魎)
강철이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한 종류로 몸에선 맹렬한 열기와 불을 뿜어내고 가뭄이나 우박 같은 자연재해를 일으킨다고 한다. 국립 국어원 표준 국어대사전에도 ‘지나가기만 하목이나 곡식이 다 말라 죽는다고 하는 전설상의 악독한 용(龍)’이라는 설명이 존재한다.
최초 기록으로는 <지봉유설>에 저자 이수광은 우연히 ‘강철이 지나간 곳은 가을도 봄과 같다’라는 속담을 접하고 뜻이 궁금해 어느 시골 노인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노인은 강철이에 대해 ‘근처 몇 리에 달하는 지역에서 풀, 나무, 곡식이 모두 타 죽게 된다’라고 설명하였다. 이수광은 이것을 <산해경>에 나오는 괴물 비(蜚)라고 생각했다.
그 후 100년 정도 지난 이후 이이가 쓴 <성호사설>의 <만물>편에서는 중국 고전의 독룡(毒龍)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이것이 가뭄이 아니라 호우로 농사를 망치는 요괴인데 “강철이 가는 곳에는 가을도 봄과 같다”는 속담 속의 강철과 비슷하다고 언급한다.
김이만의 <학고집>에서는 강철이 독룡과 비슷한데 온몸에 털이 있고 황색 기운을 띠며 호우로 농사를 망친다고 적었다. 김이만은 강철이 중국의 효(蟂)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1779년경 기록인 신돈복의 <학산한언>에서는 이의제라는 사람이 계룡산 연못에서 소와 말같기도 하고 용같기도 한 동물을 보며 강철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철원에서도 강철이 목격되었고, 철원에서는 우박을 뿌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신돈복은 강철이 가뭄을 일으키는 중국 요괴 한발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덕무의 <앙엽기>에서는 망아지처럼 생긴 요괴로, 김포의 늪 속에 살면서 가뭄을 일으킨다고 한다. 이덕무는 강철을 중국 요괴 후(犼)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1780년도 일을 기록한 박지원의 <열하일기>중 ‘성경잡지’의 ‘상루필담’ 대목에서는 청나라 사람이 불같은 기운으로 주변을 뜨겁게 하여 일대를 고생시킨 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에 다른 사람들이 화룡, 응룡, 한발 등으로 지칭하지만 글쓴이 박지원은 그런 것을 조선에서는 강철이라 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한다.
가뭄으로 농사를 다 망친다는 이야기와 호우로 농사를 망친다는 상반된 이야기가 비슷한 시기에 모두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농사를 망치는 자연재해 전반을 강철의 소행으로 돌린 것 같으며, 유학자들이 그 정체로 추측한 중국 요괴들과 무관하게 조선 후기의 혼란한 사회 가운데 농민들 사이에 자연 발생한 전설로 보인다.
1957년 8월 11일자 동아일보에 강철 목격담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전설은 비교적 최근까지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강철이에 대한 내용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맥이 끊이지 않고 전해진다. 한국일보 2015년 11월 기사에 따르면 ‘농촌에는 농사를 망치는 꽝철이 쫓기라는 민속놀이이가 전승되고 있다. 한국민속신앙사전에 따르면 경북 남부와 경남 등 사람들은 꽝철이가 산 능선에 앉는 습성이 있다고 믿어, 산 능선을 돌아다니며 꽹과리와 징을 쳐 꽝철이를 쫓고 풍년을 빌었다‘라고 되어 있다.
우박이나 가뭄 등 재앙을 흩뿌리는 존재로 묘사되는 강철이는 그 당시 농사를 방해하는 천재나 자연재해 등 인지하기 어려운 초자연적인 현상 등을 원망하기 위해 사람들이 대리 표상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대비사(大悲寺)에서는 꽝철이라는 이름으로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에 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유증선이 전병만[65세, 남,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면 안인동]에게 채록하여 1971년 발간한 <영남의 전설>에 이 이야기가 수록되어있다. 또한 청도군에서 1981년에 발간한 <내 고장 전통문화>와 1991년에 발간한 <청도 군지>에도 수록되어 있다.
‘꽝철이’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를 말하는데, 지역에 따라 강처리, 깡처리, 깡철이라고도 부른다.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에 자리한 대비사에도 꽝철이에 얽힌 이야기가 전한다.호거산 북편 대비사골에 위치한 대비사에는 상좌(上佐)가 한 사람 살았다. 어느 해 가뭄으로 온 마을 주민들이 고충을 겪고 있을 때 대비사도 마찬가지로 어려움에 처하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상좌가 가꾸는 채소밭만은 가뭄이 들지 않았다. 주지는 상좌의 밭에 있는 채소들만 시들지 않은 것이 이상하여 상좌를 의심하였다. 그런데다 매일 밤 상좌 중에 슬며시 절을 나가는 것도 이상하였다.상좌가 밤마다 향하는 곳은 운문사 계곡 깊은 곳이었다. 상좌는 용이 되어 승천할 날만을 기다리며 계곡 안쪽에 큰 못을 만들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상좌가 절을 빠져나가자 주지가 몰래 뒤를 밟았다. 한참을 따라가다 보니, 상좌가 막 용으로 변하고 있었다. 주지는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헛기침을 하였다. 그 순간 승천하려던 용은 사람의 인기척에 그만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꽝철이가 되고 말았다.꽝철이가 된 상좌는 오랫동안 고대하던 일이 무산이 되자 원통하고 화가 치밀어 꼬리로 바위들을 세게 내리쳐서 깨버렸다. 이것이 대비사 뒤쪽 호거산 봉우리 사이에 깨져 있는 듯한 형상의 ‘깨진 바위’이다. 심통을 실컷 부리고 난 뒤 꽝철이는 운문산 능선을 넘어 경상북도 밀양시 산내면으로 달아났다. 이때 꽝철이가 새로 터를 잡은 곳이 ‘시례 호박소(실이 호박소)’라고 전한다.이후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시례 호박소에서 꽝철이를 쫓기 위한 기우제를 올렸다. 꽝철이가 대대로 불을 일으켜서 가뭄을 관장하는 도깨비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화가 난 꽝철이가 불을 내뿜고 다녀 가뭄이 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꽝철이의 가을’이라고 하면 ‘흉년’을 뜻하였고, ‘꽝철이가 가는데 가을도 봄 같다.’라고 하면 그해 농사가 모내기 전으로 돌아갔다는 의미로 흉년이 된 것이라고 하였다.한편 상좌가 승천하기 위해 만든 못 근처에 있는 마을은 ‘못골’이라 하였다. 지금의 대비사골에서 호거산 능선을 너머에 위치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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