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사이에서는 도깨비가 나타난 자리, 도깨비가 노는 자리를 명당이라고 말한다. 이 자리에 집을 짓고 살면 부자가 된다고 한다. 이 곳이 어딘지 아시는 분은 저에게 알려주시기 전에, 미리 선점해서 살고 계시거나 조상의 묏자리로 쓰고 계실 것이다. 부럽다.
도깨비 터는 왜 부자가 되는 명당인가
도깨비가 부를 가져다주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도깨비를 만나고 싶어 한다. 앞선 이야기에서 도깨비는 부부의 연을 맺은 여성에게, 또 친구 관계를 맺은 남성에게 부를 가져다준다고 했다.
이 외에도 도깨비를 우연히 만나 명당자리를 얻게 되어 부자가 되거나 높은 벼슬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다. 도깨비 이야기에서 명당자리가 나오는 것은 아마도 풍수지리적인 요소가 이야기에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
옛날에 판서를 하다가 낙향해서 살던 사람이 있었다. 정직하게 살다 보니 살림살이는 하나도 없고 매우 곤궁했다. 어느 날 부친상을 당했는데 곡식이나 돈이 없어 초상을 지를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이웃동네에 살고 있는 판사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는 도중 이웃동네 판서 집 하인을 만났는데, 그 하인이 인사치레로 어디를 가시느냐고 물었다. 판서는 부친상을 당했지만 돈이 없어 초상을 치를 수 없기 때문에 너의 주인에게 돈을 꾸려가는 길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하인은 그 집에 가도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거라고 말하면서,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 판서는 곡식과 베, 그리고 약간의 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인은 말을 듣고는 집에 돌아가 계시면 갖다드리겠다고 하고는 사라졌다. 판서는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그러마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이 되어 그 하인은 판서가 말한 품목들을 마당에 내려놓고는 물었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더 필요한 것은 없고, 장사를 치르려면 상여꾼이 있어야겠는데,..”
그렇게 말하자 하인을 상여꾼들은 제가 부를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이 하인이 꼭 밤에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처음에 관서는 아무 생각 없이 넘어 갔지만, 그것이 매우 궁금해졌다. 발인이 되어 상여가 나가야 하는데, 새벽부터 기다려도 그 하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한밤중이 되어서야 사람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판서는 낮에 상여가 나가야지 밤에 어떻게 나가느냐고 물었지만 그 하인은 막무가내로 지금 나가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판서는 장지가 어딘지 알려 주었다. 그러자 그 하인은 함께 온 사람들을 시켜 상여를 메게 하더니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판서는 그제야 이 하인이 사람이 아니라 도깨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 시신을 메고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니 잃어 버린 것은 아닌가 해서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렇게 걱정을 하고 있는데, 삼 일 뒤에 도깨비가나타나서 대감을 부르는 것이었다. 판서는 어찌나 반가운지 맨발로 뛰어나왔다.
“아, 왔구나. 장사는 잘 지냈느냐? 장지로 갔느냐?”
도깨비는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하면서 삼 년이 지나면 모시고 갈 테니 지금은 찾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렇게 말하고는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삼 년이 지났다. 약속대로 도깨비가 대감을 찾아왔다. 대감은 반갑게 맞이하면서 어디에 산소를 썼는지 물었다. 도깨비는
“저를 꼭 잡고 계셔야만 갈 수 있습니다.”
하고는 바람과 같이 휙 날아갔다. 도착해서 보니 약 60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마을이었다. 도깨비는 마을 한복판에 묘를 쓴 것이다. 판서는 주막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마을 사람들에게 부친의 묘를 가리키며
“누구의 묘인지 참 좋은 묏자리에 썼군요.”
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을 펄쩍 뛰며 누구도 묘를 쓸 수 없는 곳인데 삼년 전에 무슨 일인지 하룻밤 새 묘가 만들어져 이상스럽다고 말했다. 확인을 하기 위해 묘 주위로 가기만 하면 무엇에 홀려 쫓겨 내려오곤 해서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감은 마을 사람들에게 내가 한번 올라가 볼까 하면서 묘 근처로 다가갔다. 마을 사람들은 무슨 변괴가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러냐면서 말렸지만, 대감이 묘로 다가가도 아무 일이 생기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봉분이나 상석도 너무나 잘 되어 있었다. 칠 년 뒤에 대감은 다시 영의정으로 등용되는 영광을 얻었는데, 이 모두가 묘를 잘 쓴 덕분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도깨비가 명당에 부모의 묘를 써주었기 때문에 큰 벼슬을 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판서가 영의정에 복직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청빈하다는 사실 밖에 없다. 도깨비가 판서를 도와 주게 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며 여기서 도깨비는 청렴한 인물의 후원자적인 성격 을 띠고 있다. 그리고 도깨비는 유교적인 윤리와 가치관을 지니고 생활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존재로 비춰진다. 판서가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은 관직에 있을 때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고 성실하게 직분을 지켰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청빈한 생활은 나라와 백성을 위할 줄 아는 인물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인물을 도깨비가 도와 준다는 것은 바로 민중들이 어떠한 시각으로 양반들을 바라보았는지 잘 보여 주는 것이다.
하층민에게도 도깨비가 나타나 명당을 잡아준다는 이야기도 있다. 궁핍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하층민들이 심리적인 위안을 얻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옛날 어느 마음에 김 서방이 살고 있었다. 김 서방은 부모가 주신 재산이 넉넉해서 먹고사는 데 큰 직정이 없었지만 술과 노름에 빠져 결국 집까지 남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다. 돈이 있을 때는 친구도 많았으나 돈이 떨어지자 김 서방과 술을 먹자고하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그제야 김 서방은 먹고사는 것이 힘들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친구도 없고 먹고살기도 어려워지자 김 서방은 차라리 산 속에 들어가 맹수들의 먹이가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적이 없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죽으려고 벼랑에 서 있는데 별안간 도깨비나 한번 불러보고 싶어졌다. 목청이 터져라 도깨비를 불렀는데, 그 소리를 들었는지 어디선가 도깨비가 나타났다. 그러더니 편안하게 쉬고 있는데 왜 불렀냐고 묻는 것이 아닌가. 김 서방은 도깨비가 진짜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잡고는 침착하게 말했다. 내가 죽으려고 작정했는데 혼자 죽기가 무섭고 해서 너와 같이 죽으려고 불렀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도깨비는 웬 미친놈인가 하면서도 진짜 같이 죽으려고 할까봐 겁을 냈다. 도깨비는 김 서방을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왜 죽으려고 하느냐, 내가 잘 살게 해주면 될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말이다. 그 말을 들은 김 서방은 이왕 죽으려는 마당에 무슨 말을 못 할까 싶어 자기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도깨비 는 기가 막히기도 했지만, 그냥 부자로 만들어주기보다는 자기에게 호의를 베풀면 해줄 요량으로 개 두 마리를 구해 오면 그렇게 해주마고 약속했다.
그 길로 산을 내려온 김 서방은 친구를 찾아 부탁을 하여 겨우 개 두 마리를 구해 올 수 있었다. 산으로 올라온 김 서방은 다시 도깨비를 불렀다. 도깨비에게 개를 주고는 네 부탁을 들어 주었으니 너도 내 부탁을 지켜야 한다고 다짐을 받았다. 도깨비는 개고기를 맛있게 먹고는 김 서방에게 집으로 내려가라고 하였다. 하지만 김 서방은 그럴 수 없었다. 부자도 되지 않은 상태 로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김 서방의 마음을 읽었는지 도깨비는 걱정 말고 집으로 가라고 하면서 내가 네 아버지의 묏자리를 잡아줄 테니 지금 아버지를 모신 묘가 어디 있을지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김 서방은 묏자리를 가르쳐 주고는 집으로 내려왔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김 서방은 산 속으로 들어가 다시 도깨비를 불렀다. 도깨비가 나타나자 김 서방은 묏자리를 어디에 썼는지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도깨비는 깜박 잊었네 하면서
"네 아버지의 묘는 강원도 일주명창 질주명창 호랑당창에 모셨으니 찾아가 봐라." 하고 말했다.
김 서방은 그 길로 강원도를 향해 떠났다. 하지만 도깨비가 가르쳐 준 일주명창 질주명창 호랑당창이라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명당이라고 알려진 산 속을 모두 헤매었지만 찾지 못했다.
하루는 산 속 깊숙이 자리 잡은 한 마을로 들어갔는데, 초가집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잘 사는 마을이었다. 김 서방은 길 가는 사람을 불러 일주명창 질주명창 호랑당창이란 곳을 아는지 물었다. 그 사람은 김 서방을 쳐다보더니
"이 마을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아셨소? 여기가 바로 그곳이오."
하고 의심스러운 눈초리 를 보냈다. 김 서방은 속으로 옳다구나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아무 내색 없이 이곳이 좋은 명승지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노라고 대답하였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는데, 마을에서 가장 큰 집에 무슨 우환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궁금하기도 해서 그 집으로 찾아가 하인을 불러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했다. 하인은 집에 우환이 있으니 다른 집을 찾는 것이 좋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서방은 오늘밤만이라도 이 집에서 자는 것이 소원이라고 해서 겨우 승낙을 얻을 수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 하인에게 무슨 일인가 물어보았다. 하인은 며칠 전에 불한당 같은 놈들이 이 집 가운데를 묘를 쓰고 사라져버렸는데 주인이 매우 불길한 징조로 생각하여 드러누워 있다고 하였다. 저녁을 얻어먹고 궁금해서 그 묘로 가보았더니 돈 많은 부자들이나 쓸 만큼 커다란 봉분에다 비석에도 금칠을 해서 너무나 화려했다.
집에 질린 김 서방은 새벽같이 그 집을 나와 산으로 가서 도깨비를 불렀다. 도깨비는 묘를 잘 썼는데 왜 귀찮게 하느냐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대꾸를 했다. 김 서방은 남의 집 한가운데 묘를 쓰면 나보고 어찌 성묘를 하라는 것이냐고 닦달을 했다. 도깨비는 그 집뿐 아니라 그 동네도 모두 네 것이 될 것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김 서방은 돈도 없는 내가 어떻게 땅을 사느냐고 하였다. 그 소리를 들은 도깨비는 휙 사라지더니 어디선가 돈 보따리를 들고 나타났다. 그러더니
"이 돈으로 땅을 사시 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김 서방은 그 돈을 갖고 다시 마을을 찾아갔다. 지난번에 들렸던 부잣집은 아무도 살지 않아 사람에게 물어보니 부자는 불길해서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갔다는 것이다. 헐값으로 그 집을 산 김 서방은 주변의 논과 밭을 조금씩 사들였다. 한 해가 지나자 가뭄이 들어 농사를 망친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때 서방은 도깨비가 준 돈으로 땅을 모두 사버려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도깨비는 노름꾼을 부자로 만들어주었다. 도깨비 때문에 부자가 된 사람들은 대개 동네 사람들과 화목을 이끌어 내거나, 또는 도박 등과 같은 과거의 버릇을 고치게 된다. 도깨비가 아무나 도와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도깨비가 비록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새롭게 인격화된 인물로 태어날 수 있는 사람을 도와 줬으면 하는 민간의 바람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도깨비는 뛰어난 지관(地官)?
이들 이야기 속에서 도깨비는 인간에게 놀림을 당하거나 쫓겨 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에게 부를 가져다주거나, 입신양명할 수 있도록 명당자리를 정해 주는 탁월한 지관의 역할을 한다.
명당과 관련한 인물 이야기로는 무학대사, 도선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도술적인 능력을 가졌을 뿐 아니라 풍수지리에도 밝다. 하지만 도깨비는 전혀 다르다. 도깨비는 음귀적 속성을 지닌 존재로서 부를 가져다주는 능력의 소유자다. 그런데도 이런 이야기 속에서 명당을 알고 있는 존재로 묘사되는 것은 도깨비가 부의 생산만을 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를 가져다줄 수 있는 원천으로 풍수지리에도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명당이 한 집안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고 믿어왔다. 출세뿐 아니라 부의 확대도 명당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일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도깨비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출처 『저기 도깨비가 간다』김종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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