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는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면 부자로 만들어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도깨비에게서 받은 돈으로는 땅을 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도깨비가 돈을 모래나 나뭇잎으로 바꿔 버린다고 한다. 혹여나 우연히 도깨비로부터 돈을 얻게 되면 반드시 재개발이 예정된 곳으로 부지를 구입하기를 바란다.
여자는 도깨비와 부부 관계를 맺으면 부자가 된다
어느 마을에 예쁜 과부가 살고 있었는데 밤마다 건장한 남자가 찾아와 부부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한다. 이 남자는 과부를 찾아올 때마다 돈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과부가 점차 몸이 야위어가기 시작했다. 이웃집 할머니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왜 그런지 물어 보았다. 과부는 밤마다 한 남자가 찾아와 부부관계를 맺는데 그 뒤부터 몸이 많이 마르게 되었다고 하였다. 할머니는 그 남자가 도깨비임을 한 번에 눈치 채고는 과부에게 오늘밤에도 찾아오면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물어보라고 하였다.
그날 밤에도 도깨비가 찾아왔다. 과부는 이웃집 할머니가 시킨 대로 도깨비에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도깨비는 순진하게 말머리와 말 피가 무섭다고 대답하였다. 그러고는 과부에게도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물었는데, 과부는 돈이라고 하였다.
다음날 과부는 이제까지 도깨비가 준 돈으로 땅을 사고, 장에 가서 말 한 마리도 사왔다. 사온 말을 죽이고는 말머리를 대문에 걸고 담을 따라 말 피를 뿌려놓았다. 밤중에 또 도깨비가 과부 집에 놀러 왔다. 자기가 가장 무서워 하는 말머리가 문에 걸려있었고 담장에 뿌려진 말 피를 보자마자 도망을 쳤다. 화가 난 도깨비는 과부에게 앙갚음을 하기위해 돈을 과부 집안에 던졌다. 과부는 돈을 주우면서 큰 소리 로 "아이구, 무서워! 아이구, 무서워!" 하였다. 며칠이 지나자 과부 집에서는 무섭다는 소리 대신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도깨비는 그제야 속은 줄 알고는 과부가 자기가 준 돈으로 산 논에 자갈을 잔뜩 뿌려 놓았다. 과부는 바로 도깨비짓인 줄 알고 큰 소리로 "올해 농사는 잘되겠어. 개똥으로 가득 차면 농사를 망칠 텐데.”라고 소리쳤다. 그 소리를 들은 도깨비는 자갈대신 개똥과 닭똥을 논에 채워 놓고는 놀래 주려고 과부 집에 갔다. 그런데도 계속 과부의 웃음소리만 들렸다.
도깨비는 또 속은 것을 깨닫고는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여보쇼 동네 사람들, 저 여자 말은 믿지 마쇼." 하며 떠들고 다녔다. 그 후 분에 못이긴 도깨비는 밤마다 과부의 땅을 떼어가려고 네 귀퉁이에 말뚝을 박고 끈 으로 묶은 뒤 낑낑거렸다. 요즘도 밤에 낑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것은 도깨비가 땅을 떼어가려는 소리라고 한다.
이 이야기에는 도깨비를 잘 이용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 각이 들어 있다. 전라남도 여천 지방의 바닷가에는 도깨비가
만들어준 밭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허구로 꾸며 낸 민담의 성격이 강하기는 하지만 누군가 실제로 경험했기 때문에
만들어 진 이야기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과부나 홀아비가 많은 마을에서는 농사가 안된다고 믿었다. 홀아비나 과부가 많은 고을의 수령은 중앙 정부의 문책을 받을 정도였다. 그런 배경 속에서 음기(陰氣)에 해당되는 과부를 충족시켜 주는 양(陽)으로서의 도깨비가 등장한
것이다. 도깨비가 여자 중에서도 유독 과부를 좋아한다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생각이다.
남자는 도깨비와 친구가 되어야 부자가 된다
도깨비는 순진할 뿐 아니라 사람 말을 잘 듣는다. 그런 점에서 도깨비 만나 부자 되기는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신의 잇속만 채우거나 재물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자와 부부 관계를 맺는 것과 도깨비에게 개고기를 주는 호의를 베풀어 부자가 되는 이야기도 전승된다. 이 이야기도 역시 친구 관계였는데도 탐욕스런 남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도깨비가 쫓겨난다는 내용이다.
너무 가난해서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살던 김 서방이 있었다. 하루는 장에 가면서 다리를 건너는데 밑에서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 하고 쳐다보았더니 패랭이를 쓴 어떤 사람이 자기를 부르는 것이었다. 김 서방은 가까이 다가갔다. 그 사람은 김 서방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물었다. 김 서방은 장에 가는 길이라고 말하면서 낯선 사람이 부르는 것이라 경계를 했지만, 자기 성을 아는 것을 보아 만난 적이 있었나 하고 생각했다. 패랭이를 쓴 사람은 김 서방에게 장에 가는 길에 개고기 좀 사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김 서방은 어차피 가는 길이라 그렇게 해 주마 하고 대답했다. 장에서 오는 길에 김 서방은 다리에서 그 사람을 불러 개고기를 전해주었다. 그 후로 그 사람과 친구가 되어 친해지게 되었다. 하루는 그 사람이 자기는 메밀묵을 가장 좋아하는데, 만약 메밀묵을 가져오면 김 서방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하였다.
며칠이 지난 뒤 김 서방은 그 사람에게 메밀묵을 만들어주었다. 메밀묵을 잘 먹은 사람은 김 서방에게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김 서방은 돈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 돈을 한 보따리 주었다. 그러면서 메밀묵을 만들어 주면 더 주겠다고 하였다. 김 서방은 그 사람에게 메밀묵을 가져 다줄 때마다 돈을 받았기 때문에 큰 부자가 되었다.
부자가 된 김 서방은 그 사람에게 메밀묵을 만들어주는 일에 싫증이 났다. 하루는 그에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순진하게 말 피와 말머리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김 서방은 이놈이 사람이 아니라 도깨비라는 것을 알아챘다. 집에 돌아와서 그 동안 모아두었던 돈으로 땅을 샀다. 말도 한 마리 사서 대문에 말머리를 걸고 말 피를 담에 뿌려 놓았다.
김 서방이 오지 않자 도깨비는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김 서방의 집 주변에 도깨비가 제일 무서워하는 말 피가 뿌려져있고, 대문에는 말머리가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화가 난 도깨비는 김 서방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논에 자갈을 잔뜩 쌓아두었다. 그러나 김 서방은 꾀로 도깨비의 장난을 물리치고 잘 살았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도깨비 덕분에 부자가 되었으나, 잘 모시지 않아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지만 김 서방 이야기에서는 도깨비를 이용해서 부자가 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도깨비를 이용해서 부를 얻는 사람의 지혜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반대로 순진한 도깨비를 배신하는 사람의 영악함을 경계 하는 교훈도 담겨 있다.
도깨비를 만나 부자가 되는 이야기는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을까
도깨비를 만나 부자 되기는 야래자설화(夜來者說話)와 유사한 면을 갖고 있다. 야래자(夜來者)란 밤에 찾아오는 신이(神異)한 인물을 말하는데, 이 야래자(夜來者)와 정을 통해 낳은 자식은 나중에 뛰어난 인물이 된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예로견훤설화(甄萱說話)가 있다.
옛날 광주의 북촌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딸이 하나 있었다. 그 딸은 아버지에게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매일 밤 찾아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바늘에 실을 꿰어 그의 옷에 꽂아두라고 하였다. 딸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실을 꿰어 바늘을 옷자락에 꽂아두었다. 다음날 아침, 꿰어둔 실을 따라가 보니 북쪽 담장 밑에서 바늘에 허리를 찔린 지렁이가 있었다. 그 후 딸은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나이 열다섯이 되자 스스로를 견훤이라고 하였다.
이외에도 밤에 찾아오는 이인(異人)과 관련한 야래자설화(夜來者說話)는 매우 많이 존재한다. 이 견훤설화(甄萱說話)에서 야래자(夜來者)로 나오는 지렁이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지렁이가 아니라 토룡(土龍)으로 표현되는 상징적인 존재다. 견훤이라는 역사적 인물의 출생에 지렁이를 등장시켜 견훤이 일반 사람들의 출생 과정과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이야기에 등장하는 야래자(夜來者)는 사람과는 다른 이물(異物), 인간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신이(神異)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야래자와 도깨비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야래자설화에서는 밤마다 이물(異物)이 찾아온다. 도깨비를 만나 부자가 되는 이야기에서도 도깨비는 밤마다 찾아온다. 또 두 이야기 모두 밤에 여자를 찾아와 관계를 맺는다.
이처럼 이야기의 세부적인 내용은 바뀌었다고 해도 이야기의 구조는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에 도깨비를 만나 부자가 되는 이야기는 야래자설화로부터 변화되어 전해진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도깨비는 야래자처럼 여성에게 임신을 시켜 뛰어난 인물을 생산하는 능력을 지닌 신이한 존재로 나타나지 않는다.도깨비는 인간에게 배신당하 고 놀림당하는 순진하고 어리숙한 존재로 재물을 가져다 줄 뿐이다. 둘 다 여자와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야래자는 자손을 생산하여 큰 인물을 탄생시키지만 도깨비는 그러지 못한다.
도깨비가 인간과 맺는 관계는 일종의 교환 관계다. 인간은 도깨비에게 호의를 베풀고 도깨비는 보답을 한다는 것에서 알 수있다. 그런데 재물을 차지한 사람은 도깨비를 매정하게 쫓아버리고 재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순진한 도깨비는 사람에게 이용만 당하고 쫓겨난다.
신통력을 갖고 있는 도깨비지만 사람만큼 영리하지 못한 반면에 도깨비는 관계를 맺은 이를 도와 부자로 만들어주어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존재다. 사람은 재물 때문에 의리나 신의를 헌신 버리듯 하는 행동을 한다. 결국 도깨비를 만나 부자가 되ㄴ는 이야기는 재물을 탐하는 사람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출처 『저기 도깨비가 간다』김종대 저
2023.08.21 - [민속학] - 도깨비가 알려주는 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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